이번 달에는 해마다 여름방학이 되면 소록도로 봉사활동을 떠나는 워십댄스 동아리 G.O. (Great Order)를 만나보았습니다.
G.O.는 지난 2000년에 동아리 전도여행으로 소록도를 다녀온 이후 매년 여름 소록도로 봉사활동을 떠나고 있습니다. 워십댄스 동아리이면서, 여름방학이면 봉사동아리’로 변하는 G.O. 재학생 멤버들 뿐만 아니라 이미 졸업한 선배들도 여름이면 휴가를 내어 소록도에서 만난다고 하는데요, G.O의 소록도 봉사 이야기,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희 G.O)는 지난 2000년부터 작년까지 한 해를 제외하고는 여름 방학이면 소록도로 봉사여행을 떠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모두 40여명이 소록도에 모였습니다. 숙소는 북성교회라는 지역교회에서 제공을 해주셔서 9박10일 동안 머물렀습니다.
저희가 주로 했던 일은 여자들은 그곳에 계신 분들의 집안 일을 도와드리는 것과 말동무를 해드리는 일을 했구요, 남자들, 특히 예비역의 경우는 인근의 도랑파기를 비롯해서 힘을 쓰는 일들을 좀 했습니다.

그곳 ‘소록도1번지’에 계시는 분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나병환자’라고 알고 있는 한센병 환자, 엄밀히 말하면 환자였던 분들입니다. 병 자체는 이미 완치가 되었고 전염도 되지는 않지만 후유증때문에 시력을 상실하거나 손가락이나 코가 뭉그러진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쉽지 않은 상태입니다.

 

사실, 소록도로 봉사활동을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혹시 전염이라도 되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밤에 잠도 잘 오지 않고, 심지어는 동아리를 그만 둘까 하는 고민도 했었습니다. 솔직히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후유증 때문에 씻는 게 불편한 분들 집에 처음 갔을 때, 그 냄새 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던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저희를 친자식처럼 생각해주시고 또 개인적인 경험과 아픔을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와 나누어 주셔서 그때서야 저희들 마음이 열렸습니다.

 

하루는 봉사하던 할머니 댁에서 냄새가 너무 나서 차라리 밖에서 막일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문을 나섰다가 다시 돌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할머니 댁에서 이런저런 일을 도와드리고 나오는데 할머니가 불러 세우시더니 무슨 일인가 하고 의아해 하고 있는 저희 손에 생선과 파를 쥐어주셨습니다. 그러고서는 “빨리 가져가라!”하고 무뚝뚝하게 말씀하시고는 들어가셨습니다. 그때는 몇시간 전의 저희 부족한 모습이 완전히 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먹을 거리를 주신 건 참 감사했지만 속으로는 참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컸습니다.

저희가 봉사를 떠나기 전에는 이분들의 말동무가 되어드리는 게 주된 활동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직접 가보니 힘 쓸 일이 많았습니다. 작년에는, 전남도청에서 새로 집을 지어줘서 이사를 하는 시점이었는데,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위해서 저희가 새집으로 이사 가는 일을 도왔습니다. 몇 십년 동안 생활하던 곳에서 옮기다 보니 세간살이가 보통 많은 게 아니어서, 몸이 좀 고단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재정적으로 많이 부족하다 보니 1인당 하루 식비가 5천원이 채 되지 않아서 활동하던 열흘 동안 늘 배가 고팠던 기억이 납니다. 회사 다니는 졸업생 선배가 저희 일정 중반쯤에 찾아오시면서 아이스크림을 한 봉지 사왔는데, 그날 이후로 저희가 그 선배님의 팬클럽이 되어버렸답니다.

 

네. 저희는 올해도 소록도로 갑니다. 많은 봉사자들이 “내가 도와주러 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배우고 온다.”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직접 경험해 보니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사실, 2008년에는 다른 일정 때문에 소록도를 가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분들께서 만나자마자 대뜸 “작년에는 왜 안 왔냐?”고 하시면서 전에 다녀간 선배들과 찍은 사진을 보여주셔서 ‘이 분들이 우리를 다 기억하고 또 기다리고 계시는구나.’하고 놀랐습니다. 아마 소록도1번지에 한동과 G.O.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한 저희는 여름마다 소록도를 밟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