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을 끝으로 학교를 떠나게 된 지승원 교수님. 법학자이자 목사님 그리고 태권도 사범님으로 학생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신 지승원 교수님. 이번 인터뷰에서는 교수님의 삶의 또 한 부분인 태권도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Q .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법학부 교수 지승원입니다. 저는 법학 학부시절에 태권도를 시작해 지금까지 해왔습니다. 지금까지 45년 동안 좋은 스승님을 만나 이렇게 오랫동안 태권도와 연을 맺게 되어 아주 기쁩니다. 그 동안 목회를 한 세월이 30년이 넘었는데요. 목회와 법 그리고 태권도 이 세가지는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제 나름대로 삶에서 조화를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Q. 한국의 태권도는 어떤 과정을 거쳐왔나요?
초기 태권도는 5개의 무파가 있었습니다. 앞서 말한 YMCA 권법부 창시자이신 윤병인 선생께서는 만주에서 태어나 20세까지 만주 권법을 배우셨습니다. 추측하건대 윤 선생님 품새의 형태를 보면 청나라 말기 8기군 중 몽고 8기의 무술이었던 걸로 짐작됩니다. 윤병인 선생님의 스승이 몽골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 선생님은 일본의 대학으로 유학을 가 그 곳에서 가라데를 배웠습니다. 가라데는 한문으로 '당수'인데 일본의 지배를 받던 오키나와 무인들이 일본청년에게 전수하고, 당수가 점차 일본화되며 이름도 공수도로 바뀐 것이죠. 그래서 지금도 공수도 즉 가라데 연맹 규칙에 의문이 있을 시 최종적인 권위는 오키나와 본가가 갖는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가라데는 집단으로 가르치기 좋은 스포츠기에 보통 가라데를 가르친 후에 중국 무술을 가르칩니다. 이 가라데를 토대로 후에 윤 선생님의 태권도 품새가 만들어졌습니다. 태권도 품새의 겨루기 스타일은 주먹을 주로 쓰는 가라데와 달리 발을 많이 사용합니다. 발차기 위주의 경기와 시합의 태권도는 가라데보다 빨리 국제경기화가 되었죠. 어떻게 보면 가라데와 태권도는 핸드볼과 축구 정도의 차이가 있는 걸로 볼 수 있겠죠. 하지만 둘 다 구기라는 점에서 그 뿌리는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태권도가 여러 변화 과정을 거쳐 오늘 날 태권도 협회로 통합되기까지 저는 윤병인 선생께서 처음 선 보인 태권도를 보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은 만주에서도 문화 대혁명 기간에 옛 태권도의 모습이 많이 변질되어 찾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전부는 아니지만 그나마 상당부분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Q. 태권도를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제게 가르침을 주신 박철희 선생님과 홍정표 선생님은 YMCA 권법부에서 윤병인 선생님께 직접 가르침을 배운 분이었습니다. 대단한 태권도의 고수들이셨습니다. 홍 선생님과는 훗날 서울대학교 법과 대학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곳 직원으로 계셨거든요. 저는 중학교 시절 유도를 좋아했는데, 대학교 들어가서 2학년 때 교양학부를 끝내고 법과 대학에 들어가 만난 홍 선생님의 태권도를 보며 꼭 배우고 싶다고 결심하게 되었고 YMCA 권법부 3대가 되었습니다.
Q. 지금까지 태권도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요?
2004년 ‘Back to the 예루살렘’이라는 큰 행사가 이스라엘 현지에서 있었습니다. 한동대학생들 5명과 대전에 있는 할렐루야 시범단과 함께 참여해 예루살렘 시내에서 태권도 시범을 했죠.
당시 테러에 대한 대사관 측과 선교사들의 우려가 심했는데 우려와 달리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공연 후 한동대학교 풍물 동아리인 한풍이 가져온 북을 예루살렘 사람들이 치고 다니며 온 거리가 잔치판이 되었죠. 그 때 예언자처럼 생긴 한 이스라엘 사람이 저에게 꽃다발도 안겨주고, 군인처럼 보이는 한 분은 저에게 다윗의 별 목걸이를 주었습니다. 선교사들이 그러더군요. 그 목걸이를 주는 것은 굉장히 호의적인 반응이라고요. 아직까지 그 목걸이는 저희 집에 걸려있답니다. 우리 음악과 태권도, 즉 몸짓에 예루살렘 시민들이 굉장히 좋은 인상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Q . 한동대 제자들 가르치며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학생들은 이제 제 삶의 한 부분입니다. 그것 자체가 매우 보람 있지요. 좀 더 바람이 있다면 학생들의 삶에 무술 자체가 한 부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한동대학교 내 태권도 동아리 내에서 선후배간 관계가 돈독한 것도 보기 좋습니다.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서로 가족처럼 챙기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기도 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좋은 수련 장소에서 수련회를 매년 개최해 볼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Q. 태권도와 관련한 교수님 개인 수련이나 제자 양육의 계획은 무엇인지요?
저는 14년간, 6.25 이후 YMCA 권법부가 해체된 후 그 곳에서 사범으로 학생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습니다. 그 후 계명대학교 태권도학과에 초빙되어 교수와 학생들에게 몇 년 동안 태권도를 가르쳤죠. 그러다 기회가 닿아 한동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고요. 언제까지 이런 가르치는 기쁨이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제가 사는 날까지 계속하고 싶습니다. 수련 과정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나 환영합니다. 한동대학교 생활체육 수업 시간에 만나는 학생들도 일주일에 한 시간이지만 건강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가르쳐 주는 태권도를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의 건강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체육 활동을 하게 되면 인생의 좋은 자산이 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Q. 마지막으로 교수님에게 태권도란 어떤 의미일까요?
아까 앞서 말했듯이 태권도는 제 삶의 한 부분입니다. 대학교 학과 시절 스승님을 만나 2년 간 도장 마루를 닦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오늘날까지 이르렀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때 제 은사님이 저에게 해주신 말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 품새(형)를 할 때는 지구상의 일 점에 서서 전 우주를 상대로 하는 것이다.“ 태권도를 통해 단순한 몸짓 이상의 정신적인 의미를 깨닫는 것이라는 그 말이 지금은 어렴풋이 이해가 됩니다. 저 역시 살면서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그런 순간에도 무술이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정신적인 힘든 상황을 육체적인 움직임을 통해 극복한다는 것이 희귀한 체험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많은 스포츠맨들이 이것을 경험하고 있을 겁니다. 또 학맥과 교회 인맥과 별개로 태권도를 통해 맺은 인연들 또한 제 인생에서 매우 소중한 자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