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 메인으로 이동

한동에서 배운 가치들을 삶에 깊이 새기며, 콘텐츠를 통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동문이 있습니다. 창의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예능 PD, 박인석 동문(커뮤니케이션학부, 00학번)의 이야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동대학교 00학번 졸업생 박인석입니다. 2010년도에 KBS 예능PD로 입사해서 약 15년간 프로그램 제작에 몸담아왔고, 올해 2월에 KBS에서 퇴사하여 지금은 방송국 바깥에서 프로그램 제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Q. 먼저, PD라는 길을 선택하신 계기와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사실 살면서 단 한 번도 PD라는 장래희망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스포츠를 워낙 좋아해서 스포츠 캐스터나 스포츠 기자를 하고 싶었고, 한동대에 입학 후 선택했던 첫 번째 전공은 산업 정보디자인 학부(現 콘텐츠 융합 디자인학부)였습니다. 군 제대를 앞두고 뜬금없이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꽂혀서 복학과 동시에 언론정보문화학부, 그러니까 지금의 커뮤니케이션학부로 전과했는데 막상 아나운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니 저는 가망이 없겠더라고요. 뭐 얼굴, 키, 목소리 등...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죠?

그런데 복학 및 전과 이후 학부 생활이 정말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강두필 교수님과 함께했던 단편영화 제작, 이문원 교수님과 함께했던 연극 및 뮤지컬 제작, 신순철 교수님과 함께했던 토론 수업, 장규열 교수님과 함께했던 마케팅 수업 등 모든 과정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부합창대회와 학부체육대회 등 다양한 학부 행사에 참여해서 함께 고생하고 추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정말 즐겁다 못해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 행복했던 나머지 지금 성적증명서를 떼어도 F가 2과목이나 남아있긴 합니다만.

마지막 학기에 졸업하려고 보니 그제야 마음이 좀 급해졌습니다. ‘사회에 나가면 뭘 하고 먹고살아야 할까?’ 고민하던 중, 한동대 언정 학부 생활 만큼만 앞으로의 미래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편영화, 연극, 뮤지컬, 토론, 마케팅, 합창, 체육대회 등 행복했던 기억을 열거하고 보니 ‘예능PD라는 직업을 택하면 뭔가 비슷하게 살 수 있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고 졸업과 동시에 서울에 올라가서 스터디를 구하면서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막상 준비를 시작하고 보니 생각보다 합격의 문이 바늘구멍 같은 세계였고 많은 탈락을 경험했습니다. 그렇게 소위 ‘언론 고시생’으로서 3년을 보냈고 약 40번에 가까운 언론사 및 방송사 지원 끝에, 2010년 KBS 공채 37기 예능 드라마 PD로 합격했습니다. 평생의 천운을 끌어 모아서 1,200명 지원자 중에 3명의 합격자로 선택되는 순간이었습니다.



Q. PD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나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연출 데뷔작이었던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이 먼저 떠오릅니다. 조연출 생활을 끝내고 스태프 스크롤 가장 마지막에 제 이름을 올리는 첫 번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금요일 밤 11시 방송이었는데 당시에 타 방송사 프로그램들이 동시간대 시청률 순위 1, 2위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금요일 밤 11시 편성 프로그램에서 늘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었던 KBS였는데 회차가 지날수록 점차 반응이 오기 시작하다가 걸 그룹 프로젝트 <언니쓰>를 지나면서 3위에서 2위, 그리고 다시 2위에서 1위가 되었습니다. 방송 다음 날이면 기자들에게 전화가 쏟아졌고 시청자 반응 또한 뜨거웠습니다. 이렇게 프로그램이 진화하고 성장해 가는 모든 과정이 정말 너무 놀랍고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2016년 7월 1일 금요일은 개인적으로 잊지 못할 하루입니다. 그날 새벽 0시에 언니쓰의 <Shut Up> 음원이 발매되었고, 한 시간 만에 2위로 음원차트에 진입하더니 이후 계속 1위를 달리며 소위 ‘지붕킥’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같은 날 6시에 언니쓰 멤버들이 KBS 뮤직뱅크에서 걸그룹으로 정식 데뷔를 하는 장면이 전국으로 생방송을 탔고, 밤 11시 본방송 시간에는 언니쓰 뮤직비디오 촬영분이 방송되었습니다. 0시부터 24시까지 하루 종일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는 언니쓰 관련 키워드로 도배되었고 약 3개월간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릴 수 있었습니다.

객관식 정답 따위 없는 문화예술 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늘 모호한 두려움 속에서 나 스스로를 증명해 가며 살아갑니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교회 수련회에서, 대학교 전공 과정에서, 각종 공모전에서, 심지어 동아리 MT에서 ‘나’라는 사람의 경쟁력이 통할 수 있는지 늘 시험하는 스트레스를 겪는 중에 하나씩 하나씩 그 테스트의 단계를 높여갑니다.

PD의 삶 역시 하루도 빠짐없이 그러한 경쟁과 증명의 과정이고 전 국민에게 성적표가 공개되는 스트레스의 연속인데요, 그러다 보니 어떤 ‘성취의 순간’이든, 크든 작든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연출했던 <홍김동전> 역시 클래식 시청률 지표는 그리 훌륭하지 않았지만, 팬들이 보내준 커피차와 선물, 편지 등을 비롯한 각종 SNS와 커뮤니티에서 보이는 반응을 통해 프로그램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다양한 루트로 느낄 수 있었기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Q.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많은 스태프들과 협업하시면서 연출 PD로서 느끼는 어려움이나 가장 큰 고충은 무엇인가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바쁜 일정 속에 여러 사람이 협업하다 보면 늘 행복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래서 PD는 구성원들 간에 충돌하는 의견도 조율해야 하고, 제작 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상처받은 이들도 챙겨야 하고, 또 업무를 고르게 배분하면서 팀원들의 워라밸과 업무 만족도도 신경 써야 하는데요.

그래도 PD로서 100여 명의 스태프를 이끌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외로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외로움은 친구가 없고 그런 문제가 아니고요, 모두가 나만 바라보고 있고 나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그 도망갈 곳 없는 부담감을 말합니다.

조연출 및 작가들과 회의할 때, 그리고 현장에서 각 분야의 스태프들과 촬영할 때 의견을 나누고 여러모로 동료들의 도움을 받지만, 결국 최종 선택은 PD의 몫이고 모든 책임 역시 PD가 집니다. 심지어 예능의 세계에서는 그 선택과 판단이 매우 빨라야 합니다. 물론 그 외롭고 부담스러운 운명이 PD라는 업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Q. 선배님께서 제작하셨던 <언니들의 슬램덩크>, <홍김동전>은 유독 팬층이 탄탄했던 프로그램으로 기억되는데요, 선배님께서는 어떤 부분을, 중점을 두고 프로그램을 준비하시나요?

프로그램들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2010년대 어느 즈음 이후로 대중이 예능 콘텐츠를 소비하는 목적이 조금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자극적인 것’, 또는 ‘재미있는 것’을 찾는 경향도 물론 있지만, 과거에 비해 ‘좋은 것’을 보고 싶은 트렌드가 생겼다고 느끼고 있어요. 제가 프로그램을 통해서 구현하고 싶은 세계도 그런 ‘좋은 것’에 대한 이상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섭외할 때 가급적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려고 하고요. 그 좋은 사람들이 만나서 이루는 관계성을 잘 만들기 위해 카메라 안팎에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도 저기 끼고 싶다, 나도 저기서 함께 웃고 싶다, 나도 저 사람들처럼 살아보고 싶다’라는 감정을 느끼게 하기 위해 연출을 신경 쓰는 편입니다.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리즈나 <홍김동전>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은 아마도 그 관계성에서 오는 감성을 좋아해 주시는 게 아닌가 하고 추측해 봅니다.

Q. 한동대 재학 시절에 했던 경험들이 PD로서 경쟁력을 쌓는데 재산이 되었다고 하셨었는데, 대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나 활동은 무엇인가요?

후배님들께 여러 번 얘기했던 것 같은데 ‘학부 합창대회’와 ‘학부 체육대회’입니다. 그게 뭐 사실 학점을 주는 것도 아니고 어찌 보면 노는 건데요, 결과적으로 저에겐 예능피디로서의 훌륭한 연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학부합창대회를 총 3번 연출했었는데요, 매번 인생을 걸고 영혼을 갈아 넣었던 것 같습니다 하하 무대 연출의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프로젝트를 이끌어야 하는 리더십과 팀워크의 부분에서도 좋은 공부와 연습이 됐습니다.

그 외에도 단편영화 제작, 뮤지컬, 연극 등을 경험하면서 이런 연출의 영역을 ‘나도 해낼 수 있구나’ 하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은 부분도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신순철 교수님의 엄한(?) 강의와 토론 수업을 비롯한 한동대의 기본 베이스인 발표형 수업들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어디서든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누는 자리에서 늘 자신 있게 임할 수 있었습니다.

Q. 한동에서 배운 가르침 중에서 지금까지 선배님의 삶에 가장 영향을 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늘 마음에 담고 사는 교수님들께서 해주셨던 말씀 몇 가지로 대답을 대체하고 싶은데요,

류대영 교수님의 “모든 것 이전에 인간이 되어라.”, “네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라. 그러면 알아서 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이문원 교수님의 “사람은 낭떠러지 앞에 섰을 때 본인의 진가가 나온다.”, “한동대 나와서 절대 굶어 죽지 않는다.”

신순철 교수님의 “네가 하고 싶으면 해라.”, “아이디어는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떠오르는 것이다.”

강두필 교수님의 “정확하게 아는 게 아닌 것은 모르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한 가지가 더 있네요, 1학년 2학기쯤 총학생회장 선배가 중심이 되어 만든 총학 산하 기관이 하나 있었습니다. 당시 이름으로 <명예 제도 재건위원회>인데요, 저를 포함해서 4명의 00학번 동기들이 1기로 참여했었습니다. 겨울방학에 기숙사에서 합숙하면서 명예 제도에 대해 토론하고 고민하며 전문과 강령을 만들었고 이듬해부터 명예 서약식, HONOR WEEK 등의 공식 행사를 열었는데요, 이후 군대에서도 관물대에 명예 제도 전문과 강령을 붙여두고 생활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동인은 정직하고 성실해야 한다는 그 문화가 알게 모르게 지금까지의 인생에도 영향을 많이 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삶에 영향을 끼친 한동의 가르침이 무엇이냐고 한다면 사실 할 얘기가 너무 많네요 하하

Q. 세상을 바라보는 선배님만의 가치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런 거창한 건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100점 만점에 100점을 맞기 위한 인생보다는 120점을 추구하는 걸 좋아합니다. 일에서든 관계에서든 남들이 하지 않는 노력과 고생을 굳이, 그리고 기꺼이 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 사람은 결국 어디서든 빛나고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Q. 선배님의 프로그램들이 시청자들의 삶에 어떤 프로그램으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좀 추상적이지만 제가 만든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추억’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어떤 프로그램 제목을 떠올렸을 때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던 그때의 나와 그 시절이 떠오르고, 잠시나마 감상에 젖고 행복할 수 있다면 연출자로서 무한한 영광일 것 같습니다.

Q. PD를 지망하는 한동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PD를 지망하든 기자를 지망하든 저는 20대의 후배님들이 일단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미래 말고 지금 당장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러기가 생각보다 어려운 환경이잖아요. 취업은 어렵고, 스펙은 끝도 없이 쌓아야 하고, 연애를 하자니 돈은 없고, 결혼 자금은커녕 월세 내야 하고 학자금 대출 갚아야 하고.

그렇지만 장담컨대 다 잘 살아집니다. 여러분보다 조금 먼저 살아 본 저와 제 친구들이 그걸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미래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보다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20대의 시간을 그저 반짝반짝하게 가꾸어 가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20대의 하루하루를 나만의 전성기로 살아내다 보면 어느새 PD가 되어있고 기자가 되어있고 할 겁니다. 그리고 그때쯤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아 한동에서의 시간이 참 가치 있었고, 그때의 내가 젊고 예쁘고 멋졌었으며, 그 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구나’ 하는 것을요.

00학번 늙은이도 아직까지도 한동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갑니다. 이 선배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부러운 ‘20대 푸릇푸릇한 한동인’으로서의 오늘 하루가 멋지고 행복하기를 응원합니다.

Q. 동문님이 가진 앞으로의 계획이나 비전이 있을까요?

사실 그 부분을 제가 최근에 가장 많이 고민을 하고 있고요. 아마 향후 몇 년 안으로 결정이 날 것 같은데 제가 정말 원하고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조금 더 구체화해서 찾아 떠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더 할 수도 있고요. 그쪽 방향이 아마도 공연일 것 같은데, 지금 제가 정말 원하는 것이 뭔지 정말 저 자신과의 대화를 많이 하고 있어서 아직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Q. 방송 및 언론계로 진출하고 싶은 후배들에게 어떤 경험이나 어떤 준비나 공부를 했으면 하시는지 혹은 당부의 말 부탁드립니다.

제가 한동에 오기 전에 각종 매체를 통해서 우리 후배들에게 메시지를 받으면 제일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가 ‘한동이 포항에 있는데 이 지역에 있으면서 서울에 올라가지 않고 포항에서 제가 학교를 다니면 외부활동과 떨어진 이런 환경이 괜찮을까요?’ 이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아요. 근데 이 질문에서 포항, 한동대 나왔고 서울에 입사해서 하고 있습니다. 이러면 대답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얼마 전에도 이제 저희 방송 3사와 상암 쪽에 회사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 곳에 제야에 숨어 있던 선배들이 나오셔서 잠시 다같이 모였어요. 저희 언정 동문회 에서 한 열다섯 분 정도가 나왔는데, 굴지에 그런 선배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학교가 포항에 있는 거는 사실 중요한 일이 아닌 것 같고요. 저는 오늘도 한동에 와서 다시 둘러보면서 나는 다시 학교를 가도 한동으로 갈 것 같다. 제가 서울에 있는 학교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마다하고 사실 한동으로 왔거든요. 그때는 굉장히 울면서 내려왔는데, 지금은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한동일 것 같고요.

그리고 두 번째는 ‘전공과 방송이 관련이 없는데 혹은 제가 관련한 걸 하고 있는데 괜찮을까요?’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일단 저는 공연을 전공 했다 이렇게 알고 계시고 저와 함께 입사한 다른 캐스터 동기들은 둘 다 현대 무용을 전공했습니다. 굉장히 그리고 저랑 굉장히 친한 아나운서 친구는 피아노를 전공했습니다. 기계 공학 전공자도 있고요. 방송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전공이 무엇이냐는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고 언론의 뜻이 어떻게 있느냐, 얼마나 하고 싶냐, 이거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느냐, 방송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 가능성이 있느냐를 많이 보는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험적인 부분에서 어떤 경험을 해야 하느냐, 모든 경험들이 다 결국에는 방송에 쓰입니다. 방송 뿐만이 아니라 어떤 직업을 택하시든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하는 게 제가 이제 공연 전공하고 상담 심리를 전공 했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진로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뭔가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고, 내가 정말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 그런 상황이 있었을 때 일단 그때는 일단 다 해봤어요. 그때 제가 상담심리 대학원 준비도 했었고, 한의사가 되려고 침술도 공부도 했습니다. 그래서 유학을 가서 그런 공부도 해봤고요. 그 결과 상담 심리를 대학원을 공부하면서 음 이 길이 아니구나 정확하게 알았어요. 두 번째는 이제 한의사 공부를 하면서 지금도 잘 쓰고 있습니다. 오디션 보러 갈 때 떨리잖아요? 면접 보기 전에 떨려서 제가 침을 놓습니다. 스스로 셀프로 놓고, 어떻게든 쓰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 해보시고 지금도 학교에 있는 지금도 괜찮고 전공도 괜찮고, 어떤걸 경험 해도 괜찮다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Q. 곧 한동인이 될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수능을 준비하고 입시를 준비하는 친구들한테 저는 해줄 말들이 굉장히 많은데, 일단 저도 재수를 했습니다. 제가 저의 성적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재수를 했는데 시험을 더 못 봤어요. 학창 시절의 친구들에게는 수능 시험이 전부일 수 있는데, 그때 당시에는 저도 그 말이 잘 안 들렸던 것 같아요. 그냥 다 하는 말이긴 하지만, 근데 대학 와보시면 알잖아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는 걸.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제발 부디 가장 부탁하고 싶은 거는 안 좋은 선택, 안 좋은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것이 1번입니다. 두 번째는 이제 한동은 너무너무 아름다운 곳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아름다운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이니까 한동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 번 선택을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